본문 바로가기

Foundation/한국사

(4)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 < 한글,원문,영문>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1388년, 위화도 회군 위화도 회군(威化島 回軍)은 고려말기 1388년 (우왕 14) 음력 5월, 요동정벌차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까지 이른 우군 도통사(右軍 都統使)이성계가 개경으로 회군(回軍)한 사건이다. 우왕은 서경에 머물면서 전국에서 5만 여명의 군사를 징발하고 압록강에 부교를 만들어, 최영은 팔도 도통사(八道 都統使),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左軍 都統使),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右軍 都統使)로 삼아 요동정벌군을 구성하였다. 이때, 우왕은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건 최영을 출정시키지 않는 것이였다. 그렇게 총사령관이 남은 채 정벌군이 떠났다 끝까지 4불가론을 고수하는 이성계에게 동원 가능한 모든 군사를 내어 준 채로 말이다. 요동출정은 본래 이성계의 본의와 소원은 아니지만 출정군은 압롱강 하류 ..
고려의 몰락의 시작 고려의 왕, 공민왕 공민왕은 세자시절을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가서 보내게 된다 고려로 돌아와 즉위하자마자 무신정권의 세력 기반을 혁파하고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반원 자주정책을을 선언하고 친원파를 숙청하였으며 원나라의 이익을 대변하고 고려의 내정을 사사건건 간섭하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며 격하시켰던 기구들 (중서문하성, 상서성 등) 의 관제를 다시 복구한다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정책을 펼쳤으나 노국공주의 사후 개혁의지를 상실하였다. 신돈 등을 등용하여 권문세족과 부패 관료와 외척을 정리하고 신진사대부를 중용하는 등의 개혁정책을 폈으나 실패하였다. 영명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특히 그림과 서예에 능하였다. KOREA(코리아) 는 당시 고려를 뜻 하는 말로 현재 까지도 쓰이고 ..
이승만,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1954년 11월 27일 한자 뜻 사사오입 (四捨五入) 넉 사, 버릴 사, 다섯 오, 들 입 사사오입(四捨五入)은 반올림의 일본식 표현입니다. 넷 이하는 버리고 다섯 이상은 열로 하여 원 자리에 끌어올리어 계산하는 법. 반올림.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제1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하지만 이후 1950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게 되자 이승만은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로는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기 어렵겠다고 판단, 1951년 11월 대통령선거 직선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을 시도하게 되죠.하지만 이 개헌안은 당연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이승만에 반대하는 세력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이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켜줄리 없기 때문인데요. 이에 이승만은 한창 전쟁..